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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방송

'나의 눈부신 친구'(나폴리 4부작) 익명의 작가 '엘레나 페란테'를 아시나요?

by a voyager 2020.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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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나폴리 4부작) 익명의 작가 '엘레나 페란테'를 아시나요?

 

2020/10/23 - [책, 영화, 방송] - 왓차:'My brilliant friend(나의 눈부신 친구)'의 눈부신 이야기!! (시즌 1)

 

요즘 나의 눈부신 친구(My brilliant friend)를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드라마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다. '나폴리 4부작'으로도 불리는 이탈리아어로 쓰인 원작 소설은 2015년에 출판되고,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나폴리 4부작'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맨부커상을 놓고 경합을 벌였을 정도로 작품성에서도 인정받은 소설이다. 총 4권 25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볼륨을 가졌다. 아직 읽은 것은 아니지만, 요즘 하루 한 두 편씩 보는 드라마로 소설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시즌 1이 2018년에 나왔고 올해 시즌 2가 방송됐다. 모두 볼 예정이고, 드라마에 대한 리뷰는 다 보고 써보기로 한다. 

 

이 소설은 내용과 작품성 이외에도 작가에 대한 관심도 크게 불러일으켰다. 그 이유는 작가가 정체를 들러내지 않는 은둔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와 서면으로만 소통을 할 뿐 외부의 어떤 매체와도 접촉을 하지 않는다. '엘레나 페란테'도 필명임을 볼 때, 이 작가에 대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로마대학의 텍스트 분석팀에 의하면 엘레나는 남성일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아직 작가의 성별조차도 알려지지 않았다. 

 

정체를 밝혀 달라는 독자들의 간절한 요청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책이 출간되고 난 후부터는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는다. 책에 대해서 할 말이 남아 있다면 독자를 찾아 나서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작가가 나설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 말에 깊게 동감한다. 소설이나 영화는 창작자의 손을 떠나면 그것은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독자들의 느끼는 감정은 각자 다를 것이고 그것에 작가가 개입할 권리는 없다. 

 

'향수'의 작가 파트리트 쥐스킨트 (Patrick Suskind)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제롬 샐린저(Jerome D. Salinger)도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특히, 세상에 공개된 쥐스킨트의 사진은 두 장이 있는데, 그걸 공개했던 친구와도 절교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왜 그토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지내는 것일까. 신비주의를 이용하려는 마케팅 전략인가 아니면 페란테가 말했듯이 작가의 신념이 그러한 것일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긴 하지만 그 '은둔주의 작가'도 소설의 인기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얼굴 없는 작가'의 평온을 가만히 두지 않는 모양이다.

 

2016년 이탈리아의 Sole 24 Ore 신문사는 클라우디 가티(Glaudio Gatti)라는 탐사보도 전문기자를 앞세워 페란테 작가를 추적한다.

 

몇 가지 단서를 가정한다. 로마에 거주하는 1950년대 전후 나폴리 출생일 것이고, 해외생활을 오래 했고 영어도 잘할 것이다. 이런 사람 중에 최근 소설로 큰돈을 벌었을 것이다. 

 

일종의 프로파일링 기법을 쓴 것이다. 이런 조건들을 만족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추적 끝에 가티는 Anita Raja라는 여성 작가를 '엘레나 페란테'로 지목한다. 로마에 거주하며 주로 번역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나폴리 출신의 남편을 둔 점 등 단서와 부합하는 면이 많았다.

 

그리고 얼마 후 라자가 트위터를 열고 글을 올렸다는 라티의 기사가 올라온다.

 

왼쪽 사진의 사람이 Anita Raja이고, 2015년 문학과 관련된 어떤 컨퍼런스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Anita는 자신이 엘레나로 지목된 후,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단 6개의 이탈리어의 트윗만 남겼다. 

 

트윗의 내용은 라자가 자신이 '엘레나 페란타'임을 시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페란테에 의해 쓰인 책과 독자 사이에 형성된 어떤 감정적 유대를 바꾸진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고, 앞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쓰여있었다. 

 

이 트윗은 전 세계에 걸쳐 열심히 공유되었다. 하지만 이 계정의 진위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라자는 트윗에 내용에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담당 출판사 역시 기사의 사실관계 확인을 거부했다. 이에 기사를 쓴 가티는 문학계와 대중으로부터 불필요한 신상털기에 대해 엄청난 비난을 받고 추적을 종료한다.

 

몇 년 전 황석영은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현대 소설은 연희성을 상실하고 고독한 집필자와 고독한 독자만 남은 위기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손석희의 부탁으로 '밥도둑'의 한 부분을 직접 낭독한 후 한 말이다. 여기에서 황석영은 문학에 있어 작가와 독자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읽는 독자의 상상을 풍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느 스타일도 좋다고 본다. 소통과 은둔 두 스타일 모두 다른 방식으로의 자극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냥 그 다름이 주는 즐거움을 음미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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